덕흥천문대/기타사진

아날렘마(Analemma)

국립청소년우주센터 2020. 5. 13. 10:57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1)를 아시나요? 무인도에 조난당한 택배회사 직원 척 놀랜드와 윌슨의 생존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척 놀랜드를 연기했던 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의 고단한 생존기를 표현하기 위해 23kg의 체중을 빼는 다이어트까지 했다고 합니다. 작중 주인공은 뗏목을 만들어 무인도를 나갈 계획을 세웁니다. 달력을 보며 최적의 탈출 시기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죠.

Cast away(2001), 네이버 영화

헌데 우리가 흔히 보아온 달력과는 모양이 좀 다릅니다. 주인공이 이용한 달력은 무슨 원리를 이용한 것일까요?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서 매일 태양의 사진을 찍어 1년을 모아보면 태양의 궤적이 '8'자를 그리게 됩니다. 이를 우리는 아날렘마(Analemma)라고 합니다. 즉, 하루하루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위치를 파악한다면 계절을 알 수 있습니다.

Canon 5D mark2

8mm fisheye

2016.10.5.~2017.10.4.

왼쪽부터 10:30 / 12:30 / 14:30

위 사진은 전라남도 고흥 내나로도에 위치한 국립청소년우주센터에서 찍은 것입니다. 우주센터에 오는 청소년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이 사진 오른쪽 둥근 건물입니다. 왼쪽에 천체투영관이 보이네요. 사진 중앙 파란 하늘속에 반짝이는 것들이 바로 태양입니다. 매일 10시 30분 / 12시 30분 / 14시 30분에 태양 사진을 1년간 찍어서 합성했더니 정말 '8'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넓은 하늘에서 태양의 위치 변화를 눈으로 파악하기는 정말 어렵죠. 자 다시 영화속 장면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아래에 밝은 점이 보이시나요? 바로 태양 빛입니다. 주인공이 생활하던 동굴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태양 빛이 동굴바닥에 작게 맺힙니다. 하루하루 같은 시각에 태양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니 저 밝은 점도 조금씩 움직이겠죠? 이 원리만 알고 있으면 무인도에서도 계절, 나아가 월, 일까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왜 1년간 태양의 위치가 변하는 것일까요? 이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구의 운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지구의 공전궤도상 운동속도의 변화

인류는 시각을 확인하는 방법중 하나로 하늘에 보이는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태양이 남중해서 그 다음 날 남중할 때 까지의 시간을 '하루'라고 정해서 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의 개념을 정하게 되면 실제 '하루'라는 시간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며 변합니다.

지구 공전 속도 변화와 태양 남중시각 변화 예시. 태양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지구는 태양과 가장 가까울 때 하루의 이동거리를 나타낸 것이며, 오른쪽에 있는 지구는 태양과 가장 멀 때 하루의 이동거리를 표시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그림을 과장되게 그렸다.

태양이 남중해서 그 다음 날 남중할 때 까지를 '하루'로 정했습니다. 그러면 지구가 정확하게 360도만 스스로 돌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로도 돌기 때문에 '하루'동안 지구는 360도보다 조금 더 돌아야 됩니다. 이때 문제가 생깁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의 공전궤도는 타원입니다. 태양에 가까울 때 지구는 빨리 돌고 멀 때는 느리게 돕니다. 따라서 지구가 태양 가까이 있을 때는 '하루'의 길이가 길어집니다. 반대로 태양에서 멀 때는 '하루'의 길이가 짧아집니다.

 

2. 지구 자전축이 공전궤도면의 수직한 방향에 대해 약 23.5도 기울어져 있는 것

'하루'의 길이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 때문에도 변합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지구가 공전궤도면에 대해 완전 서 있는 상태로 공전하는 상태와 완전 누워서 공전하는 상태를 비교해보겠습니다.

가정 1.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모습입니다.

지구가 기울어지지 않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태양이 남중했을 때부터 다음 날 남중할 때 까지는 지구가 공전한 만큼 자전도 더 해야합니다. 

가정 2. 지구의 자전축이 누워있다는 가정입니다.

만약 지구가 완전 누워서 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때 태양이 남중해서 다음 날 남중할 때까지 지구는 딱 한 바퀴, 360도만 돌면 됩니다. 지구의 공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집니다. 따라서 가정 1보다 하루의 길이가 짧습니다.

가정 3. 지구의 자전축이 조금 기울어져있는 상태입니다.

지구가 살짝 기울어져있습니다. 태양이 남중해서 다음 날 남중할 때까지 지구가 돌려면 가정 1보다는 조금 적게, 가정 2보다는 조금 더 많이 돌면 되겠죠. 하루의 길이가 가정 1보다는 짧고, 가정 3보다는 깁니다.

하지/동지는 가정 1에 가깝고, 춘분과 추분은 가정 3에 가깝습니다. 즉, 하지와 동지 근처에서는 하루의 길이가 길어지고 춘분과 추분 근처에서는 하루의 길이가 짧아집니다.

지구 자전축 기울기로 인해 계절이 생기고 계절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3.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시간의 개념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요소가 합쳐져서 '하루'의 길이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하루'가 23시간 58분이었다가 내일은 23시간 59분이 되고 어떤 날은 '하루'가 24시간 1분이 되는 겁니다. 시계를 만들때 곤란하겠지요. 저걸 다 고려해서 만들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평균태양시라는 것을 도입했습니다. 태양 주위를 지구가 항상 똑같은 속도로 돈다. 라는 것을 가정하고 만든 시계입니다. 지구가 항상 똑같은 속도로 도니 '하루'도 항상 24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휴대폰 시계, 손목시계는 항상 '하루'가 24시간이지만 실제 지구의 움직임은 변화합니다. 휴대폰 시계로 항상 같은12시에 하늘을 보더라도 계절, 날짜에 따라 태양의 위치가 변하게 됩니다. 이걸 1년간 쭉 추적했더니 태양이 '8'자를 그리게 되고 이걸 아날렘마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달력이 없더라도 월, 일을 아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정글의 법칙에 족장님이나 단백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 아저씨의 생존기술만 배우면 무인도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